라 우루 후를 기리며 웹진 표지
이슈하나 22 · 웹진 표지

이 글을 읽기 전에

리처드 러드가 라 우루 후와의 인연을 돌아보며 전하는 기억과 감사의 글입니다. 휴먼디자인과 유전자 키, 두 가르침의 관계를 거쳐 지도에서 실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본문의 ‘나’는 원저자 리처드 러드를 가리킵니다. 한국어 독자의 이해를 위해 문장을 풀어 옮겼으며, 소제목은 읽는 흐름을 돕도록 편집했습니다. 추모시 「후의 떠남」은 원문의 이미지와 정서를 살려 번역했습니다.

한 사람이 들어오면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나의 기억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라 우루 후라는 사람이 가르침을 전할 때, 그 앞에 앉아 있으면 느껴지던 특별한 감각에 관한 기억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분이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곧바로 아실 것입니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때로는 별다른 뜻 없이 툭 던지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정확히 내려앉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전기가 튀는 듯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말할 때에도 느낄 수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있을 때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르침을 전할 때에는 그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마치 그가 어떤 주파수의 장을 방 안에 펼쳐놓으면, 우리는 그 안에 앉아 그 기운에 온몸을 맡기는 것 같았습니다.

언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어떤 진실을 실어 나르는 것은, 언어 아래에서 흐르던 주파수였습니다. 무엇을 말하는가와 더불어, 그 사람이 어떤 존재로 그 자리에 있는가가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저는 바로 그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체계에 관해 설명하기 전에, 어떤 용어나 가르침의 계보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몸으로 느꼈던 그 알아봄에서 말입니다. 설명을 이해하기에 앞서,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그에게 응답하던 기억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는 라를 알았습니다. 꽤 가까이에서 알고 지냈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라는 말 안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여행했습니다. 서로의 집에 머물렀고, 서로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별빛 아래에서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에 관해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가까이 알아가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다가가고, 그를 이해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가 다가갈 수 있었던 만큼 그를 알아갔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제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 가운데 상당한 시간을 휴먼디자인에 바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이곳 영국에서 휴먼디자인이 뿌리내리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학교를 세웠고, 지금도 사람들이 읽는 책 두 권을 썼습니다. 주요 잡지와 유력 신문에 휴먼디자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도시와 장소, 크고 작은 강의실로 그것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정작 저 자신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나아가던 때였습니다.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사람들 앞에 가져가 소개하는 일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수고가 따릅니다. 저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화려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척 설레고 흥미로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자리에 서서 라라는 사람과 그가 세상에 가져온 작업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이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휴먼디자인이라는 집에 잠시 들른 방문객이 아닙니다.

그 집을 짓는 데 실제로 힘을 보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라는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깊이로, 그는 제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아주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그토록 깊이 이해받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경험을 지금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기립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어 시를 썼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분이 그러했듯 저 역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빨리, 그렇게 예기치 않게 떠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한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에 관해 다른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 것보다, 이 시가 더 많은 것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읽어드리려 합니다.

제목은 「후의 떠남」입니다.

위대한 사람이자 깊이 존경하는 스승이었던 라 우루 후를 기억하며 썼습니다.

후의 떠남

The Passing of Hu

그는 몸집은 작았으나 경이를 품은 마음은 드넓은 사람이었다.

기타를 힘껏 휘둘러 별들을 향해 던지고 오래 사유할 진주들을 엮어 하나의 그물을 짜던 사람이었다.

어두운 옷을 입고 이를 드러낸 고집스러운 미소를 지었으나,

그의 말과 눈은 불꽃처럼 하늘로 솟았다. 내면에서 타오르는 진실에 그을린 채.

“나는 나무 위 의자에서 일 년을 살았지.”

그가 즐겨 되풀이하던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냉소를 거두고 제 이름마저 삼킨 채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가혹했던 나날과 눈을 부릅뜬 채 메말라가던 긴 밤들을 그는 노래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그의 마음을 약탈했고 기이한 환영이 펼쳐지는 아득한 높이에서 그는 제정신의 경계마저 잃었다.

그러던 어느 밤, 두려운 어느 밤,

그의 존재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었으랴.

모든 것을 보는 눈, 그 눈의 가장 깊은 중심을 통과하도록 선택된 사람이 그였음을.

운명을 가른 여드레 동안 그는 방랑자처럼 심연을 내달렸다.

자신을 아득히 넘어서는 지성 앞에서 지혜도, 힘도, 다스릴 능력도 압도당한 채,

결코 잠들지 않는 세계를 가로질러 갔다.

그것은 남쪽 하늘의 바람의 정령도, 남빛 망토를 걸치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영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둠을 머금은 빛, 흰빛 속에 깃든 검음이었다.

말하고 있던 것은 형태 자체가 내는, 형상 없는 목소리였다.

철광석의 심장부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몸에 새긴 채 다시 벼려진 후가 걸어 나왔다.

녹아 흐르는 진실을, 인간의 마지막 진실을 끌고서.

프랙털로 이어진 소수에게 건네는 시대의 끝자락의 선물이었다.

그 신비의 홍수가 지나간 뒤 어느덧 세월이 흘렀고,

전기처럼 번뜩이던 여운도 차츰 희미해진다.

그러나 그의 전설은 남아 있고, 그 손끝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도 남아 있으며,

그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우리 사이에 스며 있다.

그는 수정의 해안에 속한 사람, 발레아레스 바다의 어두운 윤곽을 지닌 해적이었다.

그는 지상의 안개 어린 포말을 밟고 지나가 인간의 가치라는 선물을 남겼다.

라 우루 후.

신들의 손님이었던 이, 이제는 바람결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

자신이 망가진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 시를 읽으니, 사실 그가 그립다는 마음이 듭니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요.

그러나 제가 “그가 그립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깊이 이해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저는 지금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이제 그가 세운 것에 관해 조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작업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휴먼디자인 시스템은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해왔습니다.

그것이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 관해 굳게 믿고 있던 거짓된 정체성에 틈을 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조건화된 마인드에 이끌려 살아왔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이미 주어진 생각들을 따라왔을 수 있습니다.

휴먼디자인은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권위를 되돌려줍니다. 그 권위를 몸으로 돌려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최면을 깨우는 일과 같습니다.

처음 이 가르침을 접하는 많은 사람에게, 그 경험은 실제로 치유이자 회복처럼 다가옵니다.

자신이 망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무엇인가 근본적인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더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깊이 받아들이는 순간에는 큰 해방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휴먼디자인은 특정한 질문들에 놀라울 만큼 명료하게 답합니다.

나는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 무엇이 나의 에너지를 움직이는가. 나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저항을 만나는가.

그것은 우리가 타고 살아가는 차량에 관한 설명입니다. 몸과 에너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밀하고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디자인을 거슬러 살아갈 때, 자신의 본성을 외면한 채 살아갈 때 고통을 겪는다는 통찰입니다.

그래서 라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먼저 차량을 안정시키세요. 그러면 그 올바름과 안정 속에서 나머지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우선 자신의 삶이 자신의 작동 방식에 맞게 놓이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그 바탕이 안정되면, 그 위에서 다른 것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그 가르침은 제 안에 아주 깊이 들어왔습니다.

차량을 이해한 뒤에도 남아 있는 질문들

저는 여러 해 동안 휴먼디자인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제 가르침인 유전자 키 안에서도 살아왔습니다.

저에게 이 둘은 두 개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휴먼디자인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어느 순간 하나의 지점에 이릅니다.

자신의 타입과 권위를 알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것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과정과 씨름합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손을 놓고, 자신을 이끌어온 조건화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도, 내면에는 여전히 질문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아직 답을 만나지 못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어루만져지지 않은 아픔도 있었습니다.

저는 차츰 한 가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휴먼디자인은 애초부터 모든 것을 치유하기 위해 주어진 체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맡고 있는 작업의 중심은 차량에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과 영혼의 모든 문제를 대신 다루어주는 체계라기보다, 자신이 어떤 차량을 타고 살아가는지를 알아가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여정은 여러분 자신에게 넘겨줍니다.

여러분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것을 치유해줄 체계가 반드시 휴먼디자인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지도가 지닌 가치를 낮추는 말이 아닙니다. 그 지도가 무엇을 보여주는지,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걸어가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지도 제작자와 자신의 길을 걷는 순례자

라는 지도 제작자였습니다.

그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밀하게 한 인간의 지도를 그렸습니다.

지도는 놀랍고 신성한 것입니다. 낯선 땅을 가로질러 가야 할 때, 지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길을 가늠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여행자가 지도를 접어야 하는 때도 찾아옵니다.

지도를 내려다보던 눈을 들어, 자신의 발로 그 영토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들어선 그 땅은 지도보다 훨씬 기묘하고, 훨씬 살아 있으며, 훨씬 경이롭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런 여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직접 길을 걸어가야 하는 순례자였습니다.

라 역시 제 안의 그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가 그린 지도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지도를 접었습니다. 주머니에 넣고, 그것을 펼쳐 들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을 실제로 살아가는 일은 저를 전혀 새로운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런 곳에 이르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저 자신의 가르침인 유전자 키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휴먼디자인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확장이었습니다.

라는 늘 제가 이 지식을 더 멀리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게 직접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언젠가는 제가 저만의 『주역』을 쓰게 될 것이며, 그 안에는 그림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최근에 완성한 작업입니다.

마침 그 책은 2027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휴먼디자인의 지도를 지나, 저 자신의 무언가를 향해 계속 걸어갔습니다.

휴먼디자인에서 출발한 저는 그것을 하나의 살아 있는 관조로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배운 것을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제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배웠던 게이트와 라인, 그 모든 것이 제 안에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훨씬 더 넓은 무엇인가로 열려갔습니다.

그 새로운 풍경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림자와 선물을 품은 말들, 여러 주파수의 차이를 담아낼 수 있는 풍부한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그 언어를 통해 점점 더 깊은 차원의 층위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곳에는 이전과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마주하고 그려내는 풍경인 유전자 키는, 휴먼디자인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두 세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전자 키로 들어가기 위해 휴먼디자인을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휴먼디자인을 따르기 위해 유전자 키를 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두 세계는 서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둘 다 지니고 갈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 지닐 수도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쪽도 지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딛고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바탕입니다.

무엇이 자신의 발밑에 땅을 마련해주는가.

무엇이 실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이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휴먼디자인 차트를 가지고 있다면,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아직 자신의 차트를 본 적이 없다면, 한번 찾아보고 깊이 들여다보세요.

다만 어쩌면, 단 한 번 깊이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깊은 곳에 와닿는 열쇠 하나가 떠오르도록 해보세요. 머리로 외워야 하는 정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알아보게 하는 진실한 직관 하나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그 통찰을 가지고 실제로 살아보세요.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했던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에게 그 열쇠는 기다림이었습니다.

그저 기다리는 것. 다만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내를 제 평생의 일로 삼았습니다. 제 존재 전체가 배워가는 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서 다른 모든 것이 자라났습니다.

제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지도 안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조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러한 체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다가, 그 안에서 정작 자신을 잃어버리기는 무척 쉽기 때문입니다.

휴먼디자인은 아름다운 지도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수년 동안 그 메커니즘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차트를 더 완벽하게 파악하는 데 몰두할 수 있습니다.

차량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연구하고 또 연구하면서, 어느새 그 연구를 여정 자체로 여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차량을 이해하는 일과, 그 차량을 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서로 뒤섞이는 것입니다.

제 작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전자 키 역시 지도입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지도입니다. 기계학보다는 시로 이루어진 지도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지도 역시 여러분을 붙잡아둘 수 있습니다.

관조하고 또 관조하지만, 그 관조가 실제 삶에서는 좀처럼 어떤 모습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끝없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동안에도, 정작 살아가야 할 여정은 시작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지도야말로, 때로는 가장 쉽게 길을 잃는 지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도를 너무 무겁게 쥐지 마세요.

제가 만든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제가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지도는 영토가 아닙니다.

지도는 어떤 땅을 가리키고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직접 밟으며 살아가는 경험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그 영토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며, 여러분의 직관이며, 내면에 살아 있는 여러분의 존재입니다.

여정의 끝에서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라는 우리에게 훌륭한 지도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우리보다 먼저 길을 떠났습니다.

저는 때때로 여정의 끝에서 우리 둘이 다시 마주 앉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한쪽에는 지도 제작자가 앉아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순례하는 시인이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만들고 발전시킨 두 체계는 어떻게 달랐는지,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했고 무엇을 두고 논쟁했는지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습니다.

그저 함께 웃는 것입니다.

가장 깊은 자리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지도 자체가 아니었으니까요.

라를 떠올리며 그 사람의 가장 깊은 중심으로 돌아가 보면, 저는 그곳에서 구루를 보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족의 삶을 살아간 사람을 봅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였던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며, 그들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던 사람을 봅니다.

그는 분명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완벽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마 누구보다 먼저 웃음을 터뜨릴 사람도 그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의 존재에는 바로 그 분명함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가 제게 남긴 것은 그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허락이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의심할 여지 없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도 된다는 허락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제 작업을 통해 그 허락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물려받은 유산의 전부입니다.

제 감사는 바로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두 아버지가 함께 앉아 웃고 있는 그 자리에 말입니다.

이제는 바람결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

그러니 라,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남긴 유산에 감사합니다.

믿기 어려울 만큼 깊었던 헌신에 감사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아이들을 향해 쏟았던 정성에 감사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것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깊이 사랑합니다.

당신은 신들의 손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람결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입니다.

평화를.

출처와 발행 정보

원제 Ra Uru Hu Tribute · 발표 채널 Gene Keys

원문·추모시 리처드 러드 Richard Rudd

한국어 번역·전달 마이클 김종근 · 진키코리아 젠톨로지연구소 · 2026년 10월 17일

본문은 영문 영상 스크립트의 발언 순서와 추모시 전문을 따라 번역·윤문했습니다. 개인적 회고와 출간 예정 시점은 원저자가 발언한 당시의 맥락에 따르며, 추모시의 이미지와 표현은 원저자의 시적 언어입니다.

리처드 러드 원문
한국어 번역·전달 마이클 김종근
진키코리아 젠톨로지연구소 발행